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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은 어떻게 올림픽 종목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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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브레이킹 댄스계의 최대 이슈는 올림픽이다.

몇 년 전부터 ‘브레이킹 K’라는 이름으로 대표 선발전이 펼쳐졌고, 내로라하는 댄서가 출전해 실력을 겨뤘다. 일부는 ‘국가대표’ 댄서가 되어 진천선수촌에 입소해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스트릿 문화에서 시작된 브레이킹 댄스가 올림픽 종목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어쩌면 가장 유명할 스트릿 댄스, 비보잉

브레이킹 댄스는 50년 전 뉴욕의 브롱스에서 탄생했다. 미국인들의 스트릿 컬쳐였지만, 비교적 빠른 시간에 전 세계로 뻗어나가 수많은 청년이 즐기는 문화가 됐다. 세계에서 1:1 브레이킹 배틀을 제일 잘하는 댄서를 뽑는 <레드불 BC ONE>은 매년 성황을 이루고, 프리스타일 세션, 아웃브레이크, 배틀 오브 더 이어 등 브레이킹 댄스를 메인으로 둔 세계 대회 또한 곳곳에서 펼쳐진다.

레드불을 비롯해 몬스터 에너지, 아디다스, G-SHOCK, 퓨마 등 세계적인 브랜드가 브레이킹 댄서를 후원하는 건 이제 어색한 일이 아니다. 길거리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문화 정도로 취급 받던 스트릿 댄스가 체계적인 대회를 지닌 더 큰 문화로 성장한 셈이다. 세계 대회의 규모와 후원사의 면면 등을 기준으로 보면 브레이킹 댄스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스트릿 댄스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올림픽 종목’ 타이틀이 갖는 무게감

브레이킹 댄스가 이제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얼핏 보면 스케이트 보드로 스트릿 컬쳐의 가능성을 본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나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IOC가 올림픽 종목을 심사하는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어야 하고, 남녀 모두 출전할 수 있어야 하며, 상업성도 있어야 한다. 국가 보급률에 대한 기준도 있다.

유명한 스포츠라고 해도 그들의 기준에 알맞지 않으면 금새 퇴출된다. 인기 스포츠인 야구가 대표적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퇴출된 후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잠깐 부활했으나, 결론적으로는 정식 종목에서 배제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반대로 태권도는 다가오는 2028년 LA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 자격을 유지하게 됐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8연속 정식 종목 쾌거’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 주는 무게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명확한 룰 또한 올림픽 종목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생각해 보면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노력은 모두 숫자로 치환된다. 복잡한 기술은 높은 점수를 얻고, 정확하지 못한 동작은 감점의 요인이 된다. 선수의 감성과 개성을 심사기준에서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예술성’이라는 이름 아래 점수를 매기고 우열을 가린다. 선수의 모든 요소가 판정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큰 무대로 나설수록 명료한 규정에 의거한 심판의 판정은 그만큼 중요해진다. 브레이킹 댄스는 이런 점에서 오래전부터 눈을 사로잡은 댄스였다. 모든 댄서가 공유하는 기본기가 있고,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고, 댄서마다 개성이 도드라지며, 대중에 눈에 띌 수 있을만큼 볼거리도 많은 탓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댄스이기도 하다. 발목을 잡은 건 명문화된 규정의 부재였다. 대회마다 판정의 기준이 없던 건 아니지만, 심사위원의 안목과 경험에 적잖이 의존했다. 스트릿 문화이기 때문에 폭력적일 거라는 부정적인 편견도 이겨내야 했다.





비보잉과 댄스 스포츠, 그들의 어색한 악수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건 룰을 정비하고 체계를 다잡을 협회의 존재였다. IOC에서 원하는 형태로 브레이킹 댄스가 스타일을 바꾼다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세계 댄스스포츠 연맹(WDSF)이 나서 브레이킹 댄스를 올림픽 종목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이유다.

하지만 댄서들이 마냥 반긴 건 아니었다. 스트릿 댄스와 연관성도 부족하고, 스트릿 댄서는 커녕 브레이킹 댄서도 아닌 사람들이 브레이킹 댄스를 대표하게 된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2017년 는 청원에 2,000명 이상이 호응했던 이유다. 협회가 브레이킹 댄스를 착취하고, 예술성을 거세하고, ‘댄스스포츠의 올림픽 진출’이라는 숙원 사업의 미끼로 악용한다는 내용의 청원이었다. 배드민턴협회가 야구를 대표하고, 승마협회가 모터스포츠를 대표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브레이킹 댄스의 가능성을 본 WDSF와 댄스 커뮤니티는 멈출 이유가 없었다. 유스 올림픽에 브레이킹 댄스를 세우며 비보잉의 잠재력을 대중과 IOC에게 어필했고, 이후 브레이킹 댄스는 2024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스포츠댄스가 ‘댄스스포츠’라는 이름을 달고 시범종목에 채택된 이후 번번이 올림픽 도전에 실패했던 댄스 커뮤니티로서는 24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결과적으로 브레이킹 댄스는 여태껏 보지 못한 수많은 대중과 국가가 지켜보는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서게 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 그 과정은 복잡다단했고, 모든 댄서와 문화 종사자가 동의한 일은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WDSF가 주관하는 브레이킹 대회는 매달 열리고 있다. WDSF가 제정한 룰과 판정 시스템, 이를 습득한 심사위원을 중심으로 승자와 패자가 빠르게 나뉜다.

결과물은 완벽하지 않다. 판정엔 논란이 따르고, 점수를 매기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따금씩 잡음이 들린다. 상대적으로 고득점을 얻을 수 있는 스타일이 정형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따른다. 협회는 선수별 성과에 따른 포인트제와 정기적인 세계대회 개최를 통해 올림픽 티켓을 공정하게 부여하려고 하지만, 적지 않은 댄서가 빡빡한 일정과 부담감에 따른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춤을 추기 위해 브레이킹 댄서가 된 건 아니었다는 푸념도 소셜 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덧 협회와 브레이킹 댄스계는 올림픽이라는 목표를 함께 바라보는 사이가 되었다. 다만 서로 발을 맞추는 데에는 미온적이다. 브레이킹 댄스와 댄스스포츠라는 각 장르가 갖는 근본적인 차이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그저 올림픽이라는 미봉책으로 불안한 동거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올림픽은 그 어떤 스포츠 이벤트보다 거대한 대회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라고 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다. 브레이킹 댄스계에는 뜻밖의 선물이자 호재일지도 모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댄스스포츠와 브레이킹 댄스의 동행은 적어도 2024년 여름까지는 유효할 것이다. 주사위가 어떤 값을 얻을지, 이 주사위를 던지는 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지는 그때쯤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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